푸른샘
블루, 핑크 그리고 화이트
01/29
블루, 핑크 그리고 화이트
멋진 선물은 포장부터 예쁘더군요. 이륙하자마자 바로 내려다보이는 靑藍빛 산등성이가 아침 운무에 젖어있습니다. 얇고 보드라운 솜 바다 위로 일렁이는 청색의 삼각 파도, 그것은 조선의 서쪽에 앉은 노령의 산맥입니다. 내가 탄 鐵새가 점점 공중으로 파고들수록 구름은 하늘빛으로 아득히 풀어지고, 산 주름 사이엔 어제 내린 눈이 골짜기 깊숙이 덮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붕새를 타고 적도 가까운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번 여행의 향기로 공항 면세점에서 고른 입생 로랑의 새 향수은 달콤하게 농익은 사과즙 향기가 진득하게 다가왔다가 풋풋한 殘香을 남기고 아쉽게 떠나버립니다. 진 핑크의 상자에 담긴 밑면이 뾰족해서 불안정해 보이는 팽이 형태의 용기와 엷은 핑크의 액체가 첫사랑 같은 향수, 보너스로 주어진 휴대용 스몰 사이즈도 예쁜데, 같은 과일 향을 담은 바디 로션은 펄이 섞여있어서 손등에 바르니 은가루를 뿌린 듯 현란하게 반짝거립니다.
아직도 비행기는 몇 시간째 바다 위의 구름, 그 위의 하늘 속을 활주하듯 고요히 미끄러져 갑니다. 마침 스크린에 보여주는 영화는 제목을 알 수 없지만 해양 모험 영화인 것 같습니다. 폭풍우와 싸우는 강인한 남자들의 얼굴이 화면 가득합니다. 대사 대신 듣고있는 음악은 공중을 나는 새의 리듬이라 할까요. 高空을 가르는 바이얼린의 활이 높고 섬세합니다. 무한대로 펼쳐진 카펫같은 하늘 위로 위풍당당한 대학 축전 서곡을 들으며, 몸은 철갑 속에 있지만 영혼은 날개를 단 듯 한껏 자유롭습니다.
雲平線이라 할까요. 구름은 수평의 가름대 아래로 깃털처럼 보드랍게 누워있습니다. 원형의 창 밖으로 보이는 비행기의 강한 날개가 은빛으로 반짝거립니다. 구름은 때로 흐르는 물 위의 비누 거품처럼 떠가기도 하고, 이른 봄날 곱게 쟁기질해 놓은 밭의 흙처럼 고랑을 짓기도 합니다. 때로 목화솜 뭉치 속으로 빨려들 듯 하강하며 비행기는 오래도록 멋진 포장지 위를 날고 있습니다.
드디어 쿠알라 룸프르 가까이 낮게 날자 바다가 드러납니다. 산이 솟고 섬이 누워있습니다. 산과 섬들 위에서 구름은 얼음 보송이처럼 피어오릅니다. 푸른 솔을 담뿍 이고 바다 위에 엎드린 거북 모양의 초록 섬, 섬들 위마다 구름이 솟아 키를 재고 있습니다. 무지개 빛으로 풀려서 멀어진 곳의 구름은 극지방의 빙하처럼 유유히 떠갑니다. 땅이 끝난 곳, 하얀 모래사장을 경계로 해안의 바다는 하늘에 섞여버립니다. 구름은 섬이 되어 떠있고, 땅의 누런 강물은 구부러진 뱀처럼 유연합니다.
구름나라 여행은 질리지 않는 환상의 로드 무비입니다. 끝없는 상상의 스페이스 속으로 드디어 어둠이 젖어듭니다. 점점 낮아지는 비행기... 페낭 섬 활주로엔 푸른 전조등이 별처럼 아름답습니다. 주변의 인가에도 하나씩 등이 켜지고 공항을 빠져나가는 고속도로는 황홀하게 디스플레이된 금목걸이 같습니다. 그 길을 따라 루비처럼 붉은 꼬리등을 켠 자동차가 잇대어 달립니다. 아무래도 저 곳 지상은 별 빛나는 밤하늘 한 조각 오려다가 깔아 놓은 알라딘의 동화 나라 아닐까요?
그 길을 달려 바투 페링기 비치에 도착하였습니다. 축하의 성수를 뿌리듯 가볍게 차창을 치는 빗줄기가 시원합니다. 남국의 열기보다는 서늘한 숲의 습기가 진한 녹색 어둠을 타고 흘러듭니다. 하얗게 선 호텔들의 방마다 불빛이 밝고 아늑하게 비췹니다. 어둠 속에서도 푸르게 반짝거리는 수영장의 물은 야자수 나무 아래 고요합니다.
바다로 향한 방의 발코니쪽 문을 밀고 내다보니 진홍색 억키꽃... 바닥에 수북히 떨어져 바스락거립니다. 진홍의 이파리 세 장이 입술처럼 오무린 꽃, 종잇장처럼 건조한 이파리엔 향기가 없어서 도리어 말 못하는 입술처럼 한없이 신비롭습니다. 한 웅큼 집어다가 경대 앞과 寢臺燈 아래에 흩뿌려놓고 잠을 청합니다. 겨울에서 출발한 몸은 아직 에어컨의 냉기를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전원을 통째 뽑아버리고 고요 속에 누운, 섬에서의 첫 밤입니다.
'01.01.28
旅毒 속에서 푸른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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