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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79 인도양의 바람, 섬 그리고 사람들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79 인도양의 바람, 섬 그리고 사람들

SHADHA 2004. 2. 12. 21:03


푸른샘




인도양의 바람, 섬 그리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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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의 바람, 섬 그리고 사람들


랑가위의 아침은 차게 식은 바람으로 시작됩니다. 한낮의 신열을 식혀주듯 간밤에 한 차례 내린 소나기로 후북히 젖은 길을 나섭니다. 새끼 두 마리를 거느린 야생 고양이가 얄밉도록 느리게 앞을 막고 지나갑니다. 택시를 타고 달리며 인구 사만 명 사는 이 넓은 땅이 마냥 부러워 속된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해안 가까이 흔하디 흔한 작은 섬들...  내가 사는 곳에서도 무인도에 투자하는 어리석음이 한 때 붐이었지요. 섬은 때로 혼자만의 호젓한 작은 공간이지만 때로는 구속이 되고 고립도 됩니다.


마라 대학 앞의 개천에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들을 보며 어제 해변에서 만났던 수건 쓴 여학생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바다만 바라보았을까. 먼바다에서 몰아오는 구름과 때로 나무를 통째로 부러뜨리는 큰 바람, 자연이 부어놓는 붉은 물감의 석양을... 가까운 공항에서 수시로 이륙하는 비행기들의 작은 불빛을 보며 엄청난 정적 속에 홀로 남는 자의 추운 느낌을 인도양의 뜨거운 햇빛 속에 다 녹여버릴 수 있었을까요.


택시는 선택된 코스대로 폭포가 있는 북쪽으로 달립니다. 길가에 흔한 고무나무, 원래는 브라질이 산지였는데 지금은 이곳의 생산량이 세계 1위라 합니다. 어릴 적 남국의 향수를 느끼게 하던 고무나무 화분이 기억납니다. 길가에서 이따금 작은 원숭이 무리를 만나기도 하고 소떼를 만나기도 합니다. 버팔로우처럼 검거나 인도에서처럼 흰소 혹은 잿빛이나 누런 털의 소들이 아무런 구별없이 섞여서 가고있습니다. 무심한 자연의 흐름을 거북해하고 분류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일까요.


택시를 운전하는 혼혈인 사티는 아주 톤 낮은 지적인(?) 목소리로 주변에 대해 잘 설명해 줍니다. 정말 멋진 해변과 숲이 어우러진 <왕과 나>를 찍은 촬영 현장을 설명해 줄 때는 그의 목소리가 마치 율 부린너처럼 위엄있게 들리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이리언 여자가 손을 흔듭니다. 숲에는 새들이 지절대고 길가에는 순진한 원숭이들이 겁없이 따라옵니다. 고무총을 쏘아 맞추는 장난을 해도 개의치 않는 놈들입니다. 악어 농장의 악어들도 천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도저히 야생성을 갖지 않아 보이는 무심함으로 오래 하품하고 있습니다. 새 우리에는 목청 좋은 새들의 노래 소리가 가득합니다.


랑가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비치는 Pantai Tanjong Rhu 에 있습니다. 차를 세우고 코코낫 열매를 한 통씩 마시며 해변을 따라 걸어봅니다. 하얀 모래가 가까이 섬을 향해 이어지고 사무치게 푸른 물빛은 사파이어 그 자체입니다. 그 물 위로 춤추는 빛을 내 안으로 감싸 안으며 도달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흠모로 진저리 칩니다. 중국에서 혼자 온 여인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함께 감탄합니다. 저 멀리 이 섬의 유일한 공장인 시멘트 공장의 굴뚝이 성곽처럼 둘러서서 멋진 배경이 되어 줍니다.


언더워터 파크에는 갖가지 다양한 열대 어류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이라는 점잖은 놈이 성벽과 같은 어두운 집을 유유히 들락거립니다. 갖가지 형태의 말미잘과 산호초 사이로 몸 색깔을 뽐내는 각종 물고기들의 쇼를 봅니다. 자연이 그려준 형용할 수 없는 색과 모양을 완상하며 사람들은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수로를 빠져 나오면 바로 면세점이 들어선 쇼핑 센타입니다. 공항으로 가야할 시간이어서 구경도 못했지만 굉장히 싼 모양입니다. 랑가위 섬 전체가 온갖 수입 물건에 대한 면세 지역이어서 관광객을 부르고 있지만 이곳에서도 역시 한국인은 하나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인도양의 바람 속을 마지막 걸어 나오며 사티의 배웅을 받습니다. 참으로 친절하고 거짓 없는 그들의 사는 모습이 다시 오고싶게 합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오직 충실한 자세로 사는 욕심없는 그들이기에 섬을 지킬 수 있나 봅니다. 자연은 그렇게 오래 얼어붙은 마음까지도 녹여주는 자애로운 바람, 햇살, 신록 그리고 사람들 안에 머물어 있었습니다.


'01.01.31

파라다이스를 떠나며 푸른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