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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1962년, 내 나이 15살, 중학교 2학년이었다.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서 TV가 있는 집은 유일하게 신발공장 사장집뿐이었다.그 집 아들이 내 나이 또래여서 미드 전투를 방영하는 날은 동네 아이들과 그 집 작은 거실 바닥에 모여 앉아서 흑백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전투 를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빅 마로우,닉 제이슨...하는 주연의 이름과 함께 흐르는 빠바바빰빠밤, 배경음악은 6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전투 를 본 날은 그 집의 창고에서 그 집 아들과 동네 아이들과 함께 전투 놀이를 신나게 했었다.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서도 나의 전투의 정찰 임무는 계속되었다. 그 신발 공장 아들은 지금 모 그룹의 회장이 되었다.그 친구와는 흑곰, 백곰으로 서로 부르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으나..

운명아! 너에게 결코 지지 않겠다. 죽지 않을 만큼만 아프게 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 만큼만 배고프게 하고 좌절하지 않을 만큼만의 희망을 갖게 한다. 머물 집이 없어지면 바로 머물 곳을 주고 일터가 없어지면 바로 일터를 주고 벼랑끝에 서면 바로 줄을 던져 준다. 그리 다시 일을 하게 하여 쌓이지 않을 만큼만의 부을 갖게 하고 부가 쌓이려하면 바로 다 거두어간다. 그런 굴곡 많은 삶이 몇 차례 반복되어 나는 그런 삶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희망과 좌절이 교차되고 반복되는 사이에 나는 늘 새로운 삶의 진리들을 배우고 느껴 왔지만 고되고 고통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미 예언되고 예상되어 있어 그 순리를 따르기로 하여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인 나의 인생 시험. 나는 산으로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3월이 와도 겨울 추위는 지나가지 않아서 2월에 이어서 외출과 산책을 자제하여야 했다. 눈 구경하기 어려운 부산이지만, 중부 지방에서는 폭설과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몸을 움츠려야 했다. 매일 쓰는 일기에는 종일 집에서 머물다라고 써야 했다.그래서 아내와 둘이 또는 아내와 함께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가 주요 외출 내용이 되었다. 지난 구정 전, 해운대 신시가지에 사는 친구가 전화 와서 유튜브에서 부산의 맛집에서 보았는데, 그곳이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인데 이 맛있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자주 지나치는 바로 집 근처에 위치한 곳이어서아내와 1월 17일 범천동에 위치한 에 가서 으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또 한 번의 봉급날인 국민연금과 노령연금이 나오는..

나는 몽상가인가?미래를 잊은,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의 허상과 허구만을 추구하는 그저 꿈꾸는 자인가 ?하얀 벽에 금도금의 아랍 문양. 돔처리된 회반죽 천정 아래 도는 금빛 장식 선풍기.향 커피 냄새가 싫다. 인도 카레향이 배인 벽. .... 불확실한 소유 속의 사랑은 불가능한가?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냥 올라가라 그랬다. 간밤에 전혀 잠을 자지 못한 게다.그의 수척한 얼굴뒤로 오세열吳世烈의 흑백사진이 하얀 벽에 걸린 덫처럼. 고통받는 인간의 표정과 몸짓 같았다. 하얀 반투명 커튼 뒤로 보이는 광안리 바다. 바다를 보지 말자. 바다를 보다 그의 얼굴을 보면 표정을 읽을 수 없다.새까맣기만 하다. 그의 눈 주위가 더 어두워 보인다.초조한 그의 손가락 장난질만 보인다. .... 일단 올라가서..

끝으로 향해 가는 길목에서의약간의 쉼인지, 추춤거림인지,이미 끝난 삶의 새로운 부활의 징조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수원행이거나, 광명행 출장일 때는 늘 새로운 마음이다.화려한 꿈과 오랜 소망이 담겨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그곳에서는 헛걸음이라는 것이 없다.결코 이룰 수 없는 꿈, 허망된 꿈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닌,현실적으로 언제나 확실한 자기 자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수원이나, 광명에서 밤을 지새우고 나면,늘 아침 일찍, 안양천을 지나고, 도림교도 넘고, 서울교를 넘어서 여의도로 간다.국회의사당. ... 어디 가십니까?... 입법 처장실. 두, 세 차례 통제 끝에 다다른 그곳에서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조심스레 엄청난 변화를 불러 올 오랜 소망으로 다가감을 느낀다.누구도 이 느낌을 감지하지 못한다..

2층 구름다리 건너편에서 열차에서 내린 한 무더기 인파들이 쏟아져 나왔다.계단 중간 난간 가로등 아래에 서서 바라본다.아무리 훑어봐도 보이지 않는다. 벌써 5번째 기차가 지나갔다.열차에서 내려 구름다리를 건너온 사람들은 눈보라를 동반한 매서운 바람을 헤치고 뿔뿔이 흩어졌다.뒤쳐져 걸어나오던 중년 남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려던 손 끝이 바르르 떨린다..... 춥다.... 저기, 이게 서울에서 내려오는 마지막 전철입니까?... 잘은 몰라도 한 대 정도는 더 있을 거요.등을 돌려 서둘러 가는 그의 뒷모습 너머로 하얀 눈이 계속 내린다. 역 광장 길 건너 매산로에서 지하도를 건너와서 남자들 유혹을 해대던,지하도 입구와 공중전화박스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여인..

하얀 와이셔츠를 벗었다. 조여진 넥타이를 풀고 바지도 벗어버렸다.샤워를 하고 홀가분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지난여름 이후부터 차 트렁크 안에다가 몇 벌의 여분의 옷과 양말을 담은 가방을 휴대하고 다녔다.도망자처럼,자의 아니게 오랜 시간을 방황해야 하는 시간들이 많아진 까닭이다.내일 입어야 하는 양복을 여관방 옷걸이에 걸어놓고 거리로 나섰다.서울의 위성도시인 신흥도시 광명의 화려한 밤이 열리고 있었다,걸을 수 있는, 걸으며 즐길 수 있는 거리 조성을 잘해놓은 탓으로, 외국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새로운 감각과 느낌이 강했다.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외국인들과 아름다운 여인들이 활보한다.혼자 해야 하는 저녁식사가 서글프고 외로워서 망설였다.그런 내 마음을 알아나 주는 듯이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길..

뱅뱅 사거리를 뱅뱅 돈다.이리 뱅뱅.저리 뱅뱅. 내 삶도 뱅뱅.돈도 뱅뱅.꿈도 뱅뱅. 그 해 여름.서울 뱅뱅 사거리에서 뱅뱅.테헤란로에서 뱅뱅.강남역 사거리에서 뱅뱅.그저 뱅뱅 돌았다. 돈 만들러 갔다가뱅뱅 돌다 물만 먹고 내려오는 강남. 1.60억이 왠말이고 !하늘이 무너져도 이리 무너질 수는 없다.기표 날짜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다가100억이 80억.80억이 75억까지 내려갔는데,돈 준비 됐다고 올라오라 해 놓고60억이 왠말이고 !그 여름부터겨울 문턱에 다달을 때까지올라오라 하면여기저기 빚내어,죽을지 살지도 모르고 올라왔는데, 강남 문턱이 다 닳도록 왔는데,고속도로가 다 닳도록 왔는데, 이놈들도 사기꾼,저놈들도 사기꾼, 나도 사기꾼.. 믿어야 한다는 놈도 사기꾼,그것을 믿는 놈도 사기꾼,믿어야 할 수..

1,500원짜리 IMF 곰탕 한 그릇 비우고,4,500원짜리 커피를 마신다. 두 사람이 번갈이 자리를 비우면서 커피 한 잔만 시킨다.안 마실 수만 있다면 안 마시겠는데,안 마시면 주차권에 도장을 찍을 수 없어서 마신다. 마시고 커피 값을 내나, 안 마시고 주차비를 내나,매 한가지이니 마시는 것이 낫다.그래서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마시고 한 사람은 호텔 밖,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 만나자고 한 사람도,만나러 온 사람도,IMF위환 사태로 점심 한 끼, 커피 한 잔, 기분 좋게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도,한 때 놀던 가락은 있어서꼭 관광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한다. 들어설 때,한쪽 손 번쩍 들어 반가움을 표시함도,종업원에게 인사받는 폼도,차를 시키는 매너도 세련되어커피 한 잔만 시켜도 어색함이 없다. 이..

...너희들 무엇이 제일 먹고 싶나 ? ...짜장면요... 덤프트럭 짐칸에 실린 우리 일행은 따블백 하나씩 들고 시골 촌 병아리처럼 대구시내를 가로질러 동대구역 BOQ에 도착했다. 대구훈련소에서 신병 훈련을 받고 배치된 자대로 가기 위해, 훈련병의 딱지를 떼고 진짜 군인이 되러 가는 길목의 동대구역....부산아이들 손들어 봐라.. 난 군기가 바싹든 표정으로 용감하게 손을 들었다. ...너거 내일 오후 8시까지 안동에 한놈도 빠짐없이 도착할 수 있겄나? 목청이 터지라 대답했다. ...예 ! 그날 오후 따블백 울러 매고 부산행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하룻밤을 집에서 보내게 되는 외박..그것은 행운이었다. 동대구역은 좋은 추억을 많이 간직한 역이다. 동대구역 광장으로 나서니 초가을인데도 그 더위가 엄청났다.광..

금호강을 가로지르는 제 2 아양교를 지나는 화랑로 저 먼끝에 부산으로 가는 고속도로 진입로가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족들과 둘러 앉아 따스한 밥을 먹어 본 지가 언제인지, 편안히 소파에 머리를 기대어 앉아 쥴리엣 비노쉬의 영화를 본 지가 언제인지, 낯선 여관방에서 밤새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다, 밝은 회색 하늘빛 드러날 때에 그리운 사람 만나러 오듯 서둘러 망우공원 낮은 등성이로 달려와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을 바라보며 마시는 따스한 커피 한 잔.어느새 숲새로 빠져나온 청결한 햇살들이 혼자 서성이던 자 곁으로 다가와 밤잠 설친 눈을 삭혀준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수몰지구를 고향으로 둔 사람처럼 가고 싶어도 선뜻 내가 살아가던 곳,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 그곳으로 마음 편..

부끄러운 울음을 토해내고 꺼억 꺼억 그리 울었다. 서러워서도 아니고, 슬프거나 아파서도 아니라 내가 너무 밉고 싫어서 울었다. 스스로 부끄러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금호강, 강물 속에다 그 울음소리 토해버렸다.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지키고 싶었던 자긍심과 자존심이 자꾸 다치게 된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오는 현실들이 나를 그리 만든다.젊은 날에도 굳건히 지켜오던 나를 나이가 들면서 더 고고해지지 못하고 무너져 가는 내가 부끄럽고 싫어서 울었다. 토해낸 나의 울음을 받아들고 흘러가는 금호강은 한 치의 흔들림없이 순리를 따르고 있었다. 서울, 대전, 대구찍고 부산.부산, 대구, 대전 찍고 서울. 혹시나 하는 바램으로 갔다가,절망으로 돌아와야 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