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그대 아닌 누구와...Re:운문사 가는길
10/04
그대 아닌 누구와 이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단 말인가 그대 아닌 누구와 이 꽃을 다시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대 아닌 누구와 가을 비 우산 속을 함께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나는 지나간 시간 속을 되걸어와 여기 서있습니다. 함께 걷다가 그대가 조금 비틀거렸던 자갈길을... 함초롬이 비에 젖은 상사화 꽃무더기를... 스님이 잠시 외출하신 요사채 앞마루를 찾아...
그 날 훔쳐보았던 요사채 빈방, 새하얀 당목 홋청의 베개 하나, 홋 이불... 황토벽 가까이 파르라니 둘러쳐진 모기장과 장작불의 훈향... 모두가 너무도 여전하여 당황스럽습니다. 그런데, 오직 그대는 안 보이고 정갈한 체취만이 내 주위를 감돕니다.
앞산이 홀연히 실비에 젖으며 안개에 감싸일 때도 실핏줄이 엉킬까봐 손가락 하나 닿지 못했습니다. 화염 속의 헝겊처럼 타 버릴까봐 눈빛 한번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우산 속 얼핏 스친 팔꿈치 온기에 입술조차 얼어붙는...
아, 그대 아닌 누구와 나눌 수 있는 회상입니까 그대 아닌 누구에게 고백할 수 있는 마음입니까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항상, 언제나, 역시... 나의 고통과 나의 행복을 그대는 전혀 모르는 척 하십니다.
1998년 가을
추신: 아침에 등교하던 아들이 돌아서 만원 지폐 한 장을 주며 속삭였습니다. 아빠, 힘내! - 난생 처음 자식에 대한 책임이 무엇인지 꽝 소리나게 느꼈습니다. 만원어치 기름을 넣고 빗속을 달려와 헝클어진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아마, 제가 다시 일어서는 날쯤에나 이 빛 바랜 편지를 보낼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그대의 기도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못난 뒷모습을 보일 수가 없습니다.
**** 문득 만나는 : : 외로움. : : : 알고 싶어도 알수없는 꽃이름 있듯이, : : 알고 싶어도 알수없는 마음있으니, : : : 우예, : : 알만해질듯 싶으면 : : 그 마음속에 또 다른 마음 하나. : : : : 하나, 둘,셋,넷, : : 헤아리고 또 헤아려도 : : 그 끝이 망연한 : : 꽃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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