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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58 To sleep, to die is only to dream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58 To sleep, to die is only to dream

SHADHA 2004. 2. 1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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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샘




To sleep, to die is only to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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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四行

이제 죽은 자를 경애하지 말고
죽은 자의 죽음을 생각하라
무성한 잎은 잠자는 나무의 꿈이요
꿈속의 한 안씨러움이로다

내 꿈많은 날의 지상의 윤곽을 아노니
地圖 지닌 자들의 잠든 얼굴이요
눈에 오는 소금기
지극히 가까운 자의 목마름이로다

친구여,
죽음과 생시 둘 다 사랑할 수는 없노니
허리 위의 잠
오늘도 거리엔 말없이 등불 켜지고
허리 위의 잠
내 그토록 잠든 사내를 사랑하므로
나는 때로 잠자는 법을 잊는다
                   
                   -황동규


고요히 고인 저수지의 물아래 가라앉듯 침잠했던 잠을 들추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 듯 홀로 깨이는 새벽, 이 薄明의 시간에 맨 처음 찾아드는 쓰라린 한기는 무섭습니다.
그걸 프로이드는 그랬다지요. 무의식의 꿈과 현실이 교대하는 순간의 통증이라고.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나던 순간의 呱呱聲도 이와 비슷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요?

아무튼 홀가분한 생활을 찾고싶다던 자유에 대한 갈망조차 다시 물리고 싶을 만큼 혼자 깨이는 것은 참 견딜 수가 없군요. 그러나 아무도 곁에 없이 홀로 잠 깨는 쓸쓸함을 다스리는 이 아침의 느긋함도 참 뿌듯합니다. 그래서 나프타오일의 푸른빛이 탁한 유리창 밖을 덮는 시간까지 난 마냥 눈을 감고 방해없이 누워있었습니다. 사실 이 방에는 생각을 방해할 아무 것도 없고 오직 창가에 어른거리는 마른 나뭇가지의 그림자뿐입니다

어제는 뜻밖에 찾아든 익숙한 새의 지저귐이 귓가에 오래 남아서 늦도록 쉬이 잠들지 못했습니다. 밤 깊어지자 동짓달 보름 지난 달빛이 교교해지며 뒷산 터지기 소쩍새의 울음이 그치지 않는 딸꾹질처럼 밤새 이어졌습니다. 인가 가까이에 사는 구구거리는 비둘기 소리가 낮고 춥게 파고들었습니다. 그제야 외로운 건 사람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 나비의 삶을 접고 번데기로 변신해 보는 것은 호사스런 칩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 집 양철 홈통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소리에 얼핏 귀기울입니다. 마치 눈 덮인 개울물 녹아 흐르는 듯 합니다. 이 작은 쪽방에서 홀로 잠드는 것도 홀로 깨이는 것처럼 모두가 꿈속처럼 아득한 일입니다. 또한 삶과 죽음의 장벽 언저리를 더듬으며, 언제고 돌아갈 지하 독방의 어둠과 더불어 친교하는 일도 미리 꾸어보는 꿈처럼 몹시 허망한 것이겠지요

그대들 영혼의 바다를 찾아 나간 이여!

두 개의 영혼을 섞어버렸던 거울 같은 한 사내를 떠나보낼 때, 삶과 그곳의 거리가 결코 멀지 않음을 일러주십시오. 하룻밤의 잠처럼, 한 겨울의 동면처럼, 한 삶의 끝도 단순하다고 더운 입김을 나누어주며 위로해 주십시오, 그를 사랑했던 뜨거운 화상의 흔적을 박피해 내는 통증은 초라하고 남루하게 남은 자들의 몫이라고 말입니다.


'00.12.15
바닷물로 희석된 영혼의 푸른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