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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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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샘

푸른샘87 누군들 밤의 냉혹한 마법을 감당할 수 있으리오

SHADHA 2004. 2. 14. 00:25


푸른샘




누군들 밤의 냉혹한 마법을 감당할 수 있으리오  

05/26








 
누군들 밤의 냉혹한 마법을 감당할 수 있으리오


만일 당신이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순응,
또 다른 형태의 지배를 가져오게 될 또 하나의 반응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당신은 일련의 반응을 가질 수 있고 각 반응을 자유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
그것은 마음이 매달리는 변형(가감)된 과거의 연속일 따름이다.


자유는 마음의 상태이다. - 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 의식,
모든 걸 회의하고 질문하는 자유이며 따라서 아주 강렬하게 집중적이고 능동적이고
활기에 차있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종류의 의존, 예속, 순응 및 수락을 내던진다.
그런 자유는 완전히 혼자라는 것을 함축한다.
그러나 환경과 문화 자체의 경향에,
그토록 현존적인 문화 속에서 자란 마음이 그런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
즉 완전히 고독하고 아무 리더쉽도 전통도 권위도 없는 그런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어떤 것과 친근하게 같이 살 때에만 당신은 그것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에 익숙해지는 순간 - 그 익숙해지는 것이 당신 자신의 불안이든
아니면 그 어떤 것이든지 간에 당신은 더 이상 그것과 더불어 살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강가에 산다면 며칠이 지난 뒤 당신은 그 물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며,
또 만일 당신이 방안에 그림을 하나 걸어놓고 매일 본다면
몇 주일 뒤 당신은 그걸 잃어버린다.
그것은 산이나 계곡이나 나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당신의 가족이나 남편이나 아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질투, 선망, 불안 같은 것과 더불어 살 때 당신은 그것에 익숙해져서는 안되며,
그것을 수락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새로 심은 나무를 햇빛이나 폭풍으로부터 보호하듯 그걸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그걸 비난하거나 변명하지 말고 그걸 보살펴야 한다.
그리하여 당신은 그걸 사랑하기 시작한다 - 당신이 그걸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은 질투하고 불안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보살핌에 마음을 쓰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우리-당신과 나-가 무디어지고, 선망하고, 무서워하게 된다는 걸 알면서,
우리가 - 실은 그렇지도 않으며 엄청나게 애정을 갖고 있다고 믿으면서,
쉽게 마음 상하고 알랑거리고 실증 내게 되면서,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과 더불어 살 수 있을까?


그러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문해 보자.
이 자유, 이 고독, 우리들 자신 속에 있는 바 우리의 전 구조와의 만남-
이것은 시간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가?
즉 자유가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성취될 수 있는가?
분명히 그럴 수 없는데, 왜냐하면 당신이 시간을 끌어들이자마자
당신은 자기 자신을 더욱 노예화시키기 때문이다.
당신은 점진적으로 자유롭게 될 수 없다.
그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다음 질문은 당신이 그 자유를 의식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당신이 <나는 자유롭다>고 말하면 당신은 자유롭지 않다.
그것은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그가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이미 지나간 어떤 것의 기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자유는 원망, 소원, 갈망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연스럽게 올 수 있을 따름이다.
당신이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 이미지를 만들어 냄으로써  그걸 찾을 수 없다.


그것(자유)을 만나려면 마음은 항상 삶을 바라보는 법을 알아야하며,
방법은 시간의 속박 없이,
의식의 영역 너머에 있는 자유를 위한 굉장한 운동인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 -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에서



'01.5.26

'그 음악은 제발 켜지말아요,D J'를 부르며 푸른샘 옮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