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애잔하게 파고드는 어떤 그리움.
06/23
비에 젖은 마음을 햇볕에 내다 말리듯 들판을 달리며 보는 유월의 월출산, 그 짙고 깊은 숲 그늘 아래 암벽엔 홀연 고요와 적막이 고여서 자애롭고도 위엄 당당합니다. 그 산 무릎 아래로 펼쳐진 식물성의 바다, 구획 지은 연록의 못자리들은 물 가득히 잡고 줄그어 빽빽이 써둔 공책처럼 정성만이 가득합니다.
도갑사 가는 길목, 항상 팻말만 보고 지나치던 김 완 장군 祠宇에 들렸습니다. 정갈한 동네 앞 주차장부터 양쪽에 선 남녀용 두 채의 정자부터 예사롭지 않은 유림의 기품이 넘칩니다. 오래 가꾼 정원수와 이끼 베인 정원석 사이로 새로 핀 봄꽃만이 현재시간을 말해줍니다. 산고사리 나물 널어서 말리기도 하고 햇살 홀로 놀기도 하는 너른 마당을 끼고 갖가지 수목이 교교히 아름다운 사택의 바깥마루는 맑은 미송 색깔 그대로입니다. 햇살 가득한 마당에 서서 후예들의 삶이 복되기를 빌었습니다.
항상 가는 월출산장의 정원은 공들여 가꾼 갖가지 나무들의 조화로 아늑한 곳입니다. 철따라 꽃이 피고 지며 서로 순서를 지키는 것이 이제는 마치 사이좋은 가족처럼 얽혀있습니다. 마침 옥잠화 연보랏빛 꽃대가 날씬하게 추겨오른 뒤로 동백나무 새잎의 푸름이 청정하기만 합니다. 연못엔 분수대신 물레방아에서 물 돌아 떨어지는 소리 낭랑한데 이름 모를 야생화와 외래 식물이 스스럼없이 어울려서 열대인 듯 화사하게 흐드러져 있습니다.
영암과 강진 사이를 잇는 풀치 터널 지나 <초원 가든>에서 먹는 흑염소로 끓인 양탕이 내겐 최고의 음식입니다. 향긋한 香草 냄새로 후각까지 나서서 혀를 녹여주고 부드러운 고깃살은 초고추장에 섞으면 혀끝에서 뜨겁게 녹아 내립니다. 얼큰한 국물은 들깨가루로 무디게 해서 후루룩 마시면 마시는 대로 온몸의 피가 되어 돌며 가슴을 잔뜩 부풀게 하는 특별한 효과가 있습니다.
강진 쪽에서 다시 돌아오며 오래 바라보기만 했던 예쁜 <천해 예배당>에 들렸습니다. 붉은 벽돌로 감싼 팔각의 담 둘레를 가진 예배당 건물은 첨탑 지붕이 하늘을 향해 열려있어서 밝은 하늘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오고, 또한 올리는 기도의 온갖 소원이 연무처럼 피어올라 굴뚝같은 첨탑을 따라 하늘에 상달될 듯한 참 느낌이 좋은 곳입니다. 구석구석 정성 듬뿍 들여 꾸민 하나님의 집을 오래 감탄하며 머물렀습니다. 마당은 갖가지 꽃과 곱디고운 금잔디로 덮여 잘 손질된 밭과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석양 길, 철조망에 얽힌 연분홍 메꽃 몇 송이 유리잔에 꽂아두려고 꺾었습니다 애잔한 그 꽃빛 만큼 수줍었던 신혼적의 식탁을 간소하게 차려보리라. 월출산 위로 낮게 뜬 그믐달이 차창에 어리고 하늘은 산 그림자 되받아 은은한 라일락 보라색입니다.
'01.6.23
홀로 유월의 들판을 건너며 푸른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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