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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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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과 회상 1999

대전역 앞에서

SHADHA 2025. 3. 15. 09:00

 

 

....지네들이 이 다방 통째로 전세 냈남유...

몇 시간씩이나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것도,

하 자리만 가만히 앉아 있어두 밉지 않을 것인디.

요기 치워 놓으면 요리 앉고, 조오 치워 놓으면 조리가 앉고,

싸가지들이 없어유....

 

젊고 이쁜 애들은 다들 수입 좋은 시골 변두리 다방으로 떠나고

나이 든 여자들만 역전 다방에 남았다.

그렇지 않아도 눅눅한 날씨 탓으로 짜증만 남은 다방 종업원이 

 반복되는 지루한 시간에 혼자 앉아 담배 피우다가 재떨이통에 달린 띠 점이나 보자며

동전 하나 집어놓고 손잡이를 돌리고 있는 내 곁을 지나며 들으라는 듯이 내뱉으며

구석자리를 향해 눈을 있는 대로 흘겨댄다.

 

그 싹수없는 사람들이 나의 일행이었다.

무슨 놈의 비밀 모의가 그리 많은지, 부산에서 대전까지 올라오라고 해 놓고

자기들끼리 둘씩, 세씩 이 구석, 저 구석으로 옮겨 다니며 밑도 끝도 없는 협상을 하는데,

대전의 재개발 지역에 아파트 단지 사업을 추진하는 서울에서 온 L사장이

서울과 대구에서 온 두 남자와 한참 무엇인가를 협상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도둑놈들, 70억에 저거 리베트를 7% 달란다. 5억이 아 이름이가 ?

   이자와 설정비까지 13%라니...합쳐 20%면 얼마고 ?

   14억이제 ? 그러면 54억 밖에 안남는다. 아이가 ? 안된다.  땅 중도금도 안된다.

   임마들 아이라도 서울에서는 100억 가지고 가라고 난리다.

 

참, 희한한 세상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평생 고생하고 노력하며 겨우 집 한 채 마련하고, 자식들 공부시키고

밥 먹고 살면 그래도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숫자 놀이 인가?

입만 열면 몇 십억, 몇 백억을 그냥 주머니에서 빼어 줄 듯, 쉽게 말하고,

중간에 발만 걸치고 몇 억씩 달라고 하니 정신병원에서 도망쳐 나온 놈들 같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뇌 구조나 삶의 다른 생리를 가진 외계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부산 출신 L사장이 사업이 성사되면 대단지 아파트 설계를 해달라고 부탁하여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 그때 나의 현실이었다.

 

브로커 !

사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할 때부터 내 주위에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한국형 브로커들,

한국형 브로커들은 사기꾼으로 인식되어 있었는데,

나의 죽음을 감지한 독수리처럼, 하이에나처럼, 날파리떼처럼 모여들었다.

그 브로커라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 너무 서툴고 서글프고, 엉성하기만 한데, 알면서도 속아 주는 척하고

모른 척하다 보니 정까지 들 정도로 가까워진 브로커들.

그들의 공통된 신조는 

.... 되는 일도 하나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서울에서 왔다는 S 사장이라는 사람은 생김새부터가 사기꾼의 모범 답안지 같았다.

행색은 주머니에 단돈 몇 만 원도 없어 보이는데,

입만 열면 주요 정치인과 재력가는 다 자기 손 안에서 논다고 한다.

대구에서 온 B사장이라는 사람은 선거 유세하듯 S사장을 치켜세우는데, 

... 이번에는 참, 라인을 잘 잡으셨습니다. 우리 S사장님은 전주 바로 앞입니다.

   전주하고 바로 직통이기에 여기서 돈이 된다면 되는 것입니다.

 

구석자리에서 혼자 한참이나 전화질 해던 던 S사장이라는 사람이 돌아왔다.

... 축하합니다 우리 전주께서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큰 사업 하려고 하니 사업이 추진되도록

도와주신 답니다... 80억이면 사업하는데 지장이 없겠죠 ?.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나고 또 지났는데 누구도 밥 먹으러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배가 고픈 먼저 입을 열었다.

... 제가 살 테니까 점심식사부터 하시고 하시죠?

몇 시간 만에 다방에서 나와 아래층 식당에 가서 육개장을 시켰다.

나의 제의에 따라 나선 그들은 식사가 나오자마자 개눈 감추듯 서둘러 먹어치웠다.

많이 시장했던 게다. 잘 성사된 거래라며 각자의 자화자찬 시간이 이어지고

얼마 후로 다가온 벼락부자의 꿈에 신이 난 사람들....

 

대전역 광장에 늘어선 가로수 아래로 

희망인지, 꿈인지, 

또다시 흘러가는 구름인지 모를 한 줄기 바람이 

아직도 억, 억, 거리는 가슴을 치고 지난다.

 

<1999년 독백과 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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