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告白과 回想 (125)
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희망을 찾아서 2009년 겨울 백서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나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의 풍경은 아주 서럽게 쓸쓸해 보인다. 1월 1일 첫소식은 가까운 친구의 어머니 부고였다. 그 이후로도 내게 들려오는 소식들은 깊은 인연이 있었든, 없었든 간에 생전에 한번도 뵌 적이 없었..
Daum에서의 9년 땅의 회상, 그리고 아직도 못 이룬 꿈 2000년 6월 10일, 오세아니아의 꿈으로 시작한 Daum에서의 칼럼쓰기가 벌써 8년을 지나 9년으로 접어 들고 2008년 그 한해가 또 다시 끝나가고 있다. 2000년 그때, 고등학생이던 두 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숙녀로서 사회인이 되었고 Daum에서 낯설고 서툰 실력으로 칼럼쓰기를 한 것이 어제같은데 벌써 세월이 그리 흘렀다. 다른 이들이 자주 외국을 나가기 않을 때 외국땅을 이리저리 밟고 다녔고 사진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을 때 필름카메라로 건축물 사진을 찍어서 현상하고 현상한 사진을 스캔을 떠서 다시 칼럼에 올려야 했던 때를 돌아보면, 지금은 너무도 쉽게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고 성능좋은 디지탈 카메라로 좋은 사진들을 쉽게..
개성과 서울, 7월에서 12월까지 2008년 하반기를 추억하며 2008년 하반기는 나의 일생에서 처음이며 새롭게 경험하게 되는 독특한 생활방식으로 살았다. 우리나라의 남쪽 끝 부산에서 서울을 경유하며 개성을 오가는 삶. 개성에서 지속적으로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마다 남쪽으로 돌아오는, 하여, ..
맘마미아와 가족 그리고 행복 지난 추석 가족들이 재회하는 날에 한달전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금요일날 우리 가족 4명은 영화관에 나란히 앉아 영화 를 보았다. 원정화 간첩사건과 김정일 와병의 혼란한 남북관계속에 3주간 서울과 개성을 오가다가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까지 조금은 긴장감이 돌던 개성공단에서 나오던 날, 서울에 머물던 의동생의 승용차로 밤 늦게 서울을 출발하여 새벽 3시경에 부산에 도착한 나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 선물로 줄 옷을 담은 가방 6개를 승용차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올 나에게 가져오게 맡겨놓고 먼저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온 작은 딸. 일과 후 서면의 대형서점에서 남자친구를 기다리며 책을 읽다가 모 잡지사 기자의 눈에 띄어 우연히 인터뷰를 하게 되어 책에 실렸다고 환하게..
개성공단으로 떠나기 앞서 유배지로 떠나는 마음 세상을 살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 내게 그런일이 생겼다.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 없는 상황,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 그동안 우리 회사에서 개성공단에 몇개의 공장을 설계하고 감리를 해서 두개의 공장은 준공을 하여 가동을 하고 있고, 두개의 공장이 다시 건립되고 있다. 그동안 개성공단내 공사의 감리는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감리자 지정만 해놓고 한달에 한 두번 당일치기로 올라가서 현장점검하고 내려오는 것이 관례였고 그렇게 해왔었다. 약 한달전 내가 개성공단에 갔다올 때 내 이름으로 감리자 지정을 하고 돌아왔었다. 그동안 감리자로 지정되었던 직원이 건축사 시험을 치기위해 사직했기 때문에 고급 기술자 자격 이상이..
전업주부가 된 남편 비내리는 날 성북고개 산책길에서 이 글은 훗날, 오늘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하여 일기처럼 적은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 아내를 본다. 가녀린 아내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인 나보다 더 생활력이 강해지고 억척스러워진 아내였지만 여린 여자임에는 틀림없었다. 온실에서 자란 듯 세상 물정도 모르고 여리던 아내가 강해지기 시작한 것은 IMF 이후 2차례에 걸친 나의 사업실패와 경제적 몰락, 그리고 내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후부터 남편을 대신하여 현실로 다가오는 거친 세파를 넘기 시작하면서 그리 변해 가기 시작한 것 같다. 잠든 아내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미 전업주부가 되어버린 나를 보게 되었다.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가장이었던 사람이 전업주부에 이르기까지 꽤..
삶의 반환점에서 나를 갱신한다. 나를 위해 나에게 존속되고 존속시키던 것을 끊다.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삶의 반환점을 정하는 것에 시간적 길이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이 내 삶의 반환점이라고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그 느낌은 아주 우연한 시간에 나를 찾아왔다. 일주일의 일과가 마무리되는 지난주 금요일 오후 늦은 시간. 집으로 가는 길목의 작은 카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오랜동안의 건축 인연으로 내 곁에 머무는 p소장과 에소프레소를 마셨다. 해가 뜨기도 전, 산책길에 나섰던 파리의 세느강변에서 마시던, 몽마르뜨 언덕의 빨간색 카페에서 마시던 에소프레소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혀끝에서 아주 씁쓸하면서도 목안을 타고 넘어갈 때는 깊은 향이 나는, 어쩌면 ..
미술관으로 가는 남자 부산시립미술관과 광안리 어방축제 현장을 지나며 삶을 영위하는 일. 미술관의 뜰에 앉아 그것에 관하여 생각한다. 몇 해 전부터 한달에 한번 가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특별히 바쁜 일정이 없으면 항상 부산시립미술관으로 간다. 전시회가 없는 날이면 미술관뜰에라도 앉아 잠시 머물다가 온다. 그 어느 곳 보다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달 중 병원에 가는 날, 하루만 나는 아픈 사람이고, 나머지 날들은 내가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아프지 않은 건강한 다른 사람들과 모든 것이 똑같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세월이 가면서 조금씩 죽어가는 과정을 겪는다. 다만 나는 한달에 한번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보다 조금 더 빠르게 뛰는 심장때문에 죽음에..
아빠와 딸의 데이트 부모와 자식 자식들은 부모에게서 보고 배우며,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한다. 아리따운 아가씨가 갑자기 저녁식사 데이트를 청했다. 큰 딸이 아빠에게 저녁을 사겠다며 데이트를 제안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나와 서면에 있는 약속 장소로 가는 도중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를 나에게 인사시키려는 것일까? 성격이 까다로운 제 엄마에게 인사시키기 전에 미리 나에게...? 큰 딸이 제안한 저녁식사의 장소는 몇 년 전까지, 딸들이 대학을 다닐 때까지, 가족들을 데리고 이따금 외식을 하러 가던 펍 레스토랑 였다. 딸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게 되고, 아내 또한 아내의 일때문에 저녁시간을 자주 같이 하지 못하게 되어 몇 년동안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던 곳..
숭례문과 낙산사 문화유산관리에 관한 유감 有感 숭례문이 불타고 있는 장면을 바라 보면서 나는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다. 넋을 놓았다가 이내 분노로 변해갔다. 2005년 4월 5일 양양 낙산사의 소실 때 느끼던 분노보다 훨씬 더 큰 분노가 가슴을 덮어 망연자실하게 했다. 낙산사 화재 때에도 모든 언론 매체들이 지금처럼 문화재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연일 떠들어 댔고, 정부나 문화재 관리청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문화재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하였으나 그것은 형식적인 말 뿐이었다. 그 후 3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을 태웠다.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불을 지른 70대 노인이 숭례문을 태운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형식적인 문화유산관리를 해 오던 대한민국이 후손 대대로 물려주어야 ..
가장 소중한 선물 한 권의 책과 피아노 연주 ...지배적인 생각이나 마음가짐은 자석처럼 비슷한 것을 끌어 당기는 법이므로 마음가짐이 어떠하든 그에 어울리는 조건이 삶에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마음에서 전송되는 파동은 가장 정교하고, 따라서 우주에서 가장 강력하다... .....中에서 찰스 해낼.... ...우리에게는 두 가지 감정이 있다.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 그리고 우리는 이 둘이 어떻게 다른지 안다. 좋은 감정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쁜 감정이 생기면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우울, 분노, 원한, 죄책감, 이런 감정이 느껴지면 힘이 빠진다. 그것들은 나쁜 감정이므로... 기분이 좋아진다면 좋은 감정과 느낌이 왔다는 뜻이다. 흥분, 기쁨, 감사, 사랑, 이런 감정을 날마다 느낀다면 ..
라흐마니노프와 서혜경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포기해서는 안될 건축 ....무대에도 객석에도 불이 꺼졌다. 객석에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허락해주셔서…. 피아니스트 서혜경(48). 지난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KBS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 3번 협연을 한 그녀는 지난 2006년 10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연주회를 강행하려는 그녀에게 의사는 고 물었고 그녀는 주저 없이 피아노를 택했다. 피아노 없는 삶은 의미가 없었기에. 하지만 암세포는 이미 오른쪽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절제해야 할 정도로 넓게 퍼진 상태. 주치의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 필요한 신경과 근육조직은 남겨두고 암세포만 제거하는 초정밀 수술을 했다. 서씨는 1년여 동안 33차례의 방사선 치료..